오늘 이른바 주일예배에서 벌어진 그들의 행태들을 보면서 또다시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올 지경이고 한심하고 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 20여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교회에 매주일 열심히 출석하시던 어르신 집사님 한 분이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별세하셨다는 비보를 접한 것이 겨우 일주일 전이고 아직 장례예배도 치르기 전입니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오집사님, 심집사님을 비롯한 대표단집사님들과 루디아회 임원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봉사로 유족들을 돌보고 추모예배를 무난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교회는 아직 상 중이고 고인에게는 직계유족이 없는 연고로 교회 중직자들이 일정부분 상주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보에는 별세소식과 장례 광고가 누락되어 있고 그 대신 1번 광고에 11월 생일축하 광고가 떠억하니 자리잡고 있더군요. 제 기억에 중요도가 낮은 생일자 광고는 보통 광고란 맨 마지막에 자리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무슨 긴한 사정이라도 있었는지? 

이미 월요일에 부음이 전해졌는데 이 중요한 광고를 공식 주보에서는 빼먹고 별지로 땜질을 하다니요? 본인 태만으로 빼먹었으면 속히 주보를 보완하여 다시 인쇄해야 마땅하지, 별지라니요? 아니면, 혹시 다른 의도라도 있었던 것인지?

주보는 교회의 역사가 기록되는 공적 매체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관인 장면은 그 다음에 연출되었습니다.

불과 한 주 전의 비극적 사고로 지체를 잃고 상 중에 있는 교회가 생일 축하 한답시고 박수치고 웃으며 노래하는게 가당한가요? 급하지도 않은 일, 12월로 미루면 될 것을...

담임목사는 오늘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예배에 임했던 것일까요?

고인의 부음을 접하고 나서 보인 담임목사의 일련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군요.

 

고인의 마지막날까지 남몰래 고인을 돌보시던 한 집사님이 이런 장면을 보고 예배당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시는데 청년들은 찬양예배 하겠다며 이런 상황은 아랑곳없이 마치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자기들끼리 손뼉치며 노래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행동인가요?

자신들은 단지 거룩하게 찬양한 것일 뿐인데 즐겁게 하건 박수치며 하건 무엇이 문제냐고요?

아니면, 고인은 나와 별 상관없는 분이고 지켜보는 직계유족도 없는데, 왜 슬픈 척 애도를 표해야 하느냐고요?

만약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이 고인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에, 첫 주일예배에서 목사와 일부 교인들이 오늘과 같은 행태를 보여도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낄 것이라는 사람에게는 제가 위의 두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을 하겠습니다.

 

오늘 예배에는 멀리서 유족(조카) 네 분도 참석하였습니다. 그 분들은 교회의 분위기에서 무엇을 느끼셨을까요?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으로 생각해보면 저의 문제 제기는 그리 이해하기 어렵거나 무리한 비판이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민등록증을 가진 성인이라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알고 지켜야할 사회적 예절과 인지상정에 부합하는 정서적 공감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목청껏 주장하는 교회공동체라면 더욱 그러할테지요.

 

요즘은 기독교에 대한 지식과 가르침이 사방에 넘쳐나서 얼마간 교회물을 먹은 교인이라면 주옥같은 말씀과 준열한 꾸짖음을 붕어 입질처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 대표기도는 언제부터인가 설교처럼 들려서 듣던 제가 공연히 몸 둘 바를 몰라하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요. 그래도 크리스찬의 동포애로 그들 말의 성찬을 감내해온 것은 비록 제대로 지키지 못할 허언일지언정 적어도 노력은 하리라는 그들의 진정성을 믿고 싶었던 소박한 희망사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행'불'일치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리더 행세, 집사 행세, 목사 행세,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하게 하려면 말이지요.

아무리 너그럽게 해석하려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금도의 선이 있는 거지요.

오늘 우리가 목격한 것은 과연 교양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신앙의 문제인가요? 그도저도 아니면 인간성의 문제인가요?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내가 오늘 한 행동이 대체 뮈가 문제냐?"며 발끈 성을 내고 있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