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할 말이 있는가?

지금의 한국 교회가 세상에게...

세상이 개독교니 먹사니 라고 돌을 던진다고 할 말이 있는가?

그것이 사단의 짓거리라고, 그래서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그냥 돌을 맞아야 한다.

가서 채찍이라도 때려 달라 할 용기가 없다면 던지는 돌을 피해선 안된다.

사단의 핍박이 아니라 세상을 통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 시대, 타락하여 악취가 풍기는 한국교회를 향해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설교할 자격이 있는가?

복음을 전할 낮짝이 있는가?

세상을 향해 바로 살라고 말할 수준이라도 되는가?

믿음을 자랑할, 간증이라고 꺼내어 놓을 자격이라도 있는가?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는가?

주일날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이 왜 이렇게 화끈거리는가?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고 말씀하셨다.

지금, 이 시대, 이 교회!   그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구나.

아!  우리 속엔 예수가 없다.    

교회에 예수가 없다.  

우리에게서 더이상 세상을 향해 꺼내어 놓을 것이 없다.

더 이상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

세상이 교회의 건물이나 엄청난 숫자에 감동하겠는가?

쇼 같은 예배에 감동하겠는가?

역동적인 찬양에 감동하겠는가?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지식에 감동하겠는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동물소리 내는 모습에 감동하겠는가?

아니면...

기도해서 잘사는 모습에 감동하겠는가?

 

내용이 없다.

우리 속에 아무 것도 없다.

이는...  

우리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감동시키는 방법 조차도 모르지 않는가?

세상을 감동시키지도 못하는 복음은 죽은 복음이다.

왜?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아니 망가진 것조차도 모를까?

 

오호라!

이사야의 통탄은 그 시대뿐 아니라 이 시대 이 교회를 향함이었구나!

                (사1:2-21/ 표준새번역)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를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어찌하여 너희는 더 맞을 일만 하느냐?   어찌하여 여전히 배반을 일삼느냐?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골병이 들었으며,

 발 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난 곳과 매맞은 곳과 또 새로 맞아 생긴 상처뿐인데도, 

 그것을 짜내지도 못하고, 싸매지도 못하고, 상처가 가라앉게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그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습니까?

 그 안에 정의가 충만하고, 공의가 가득하더니, 이제는 살인자들이 판을 칩니다“

 

이 시대, 이 교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

가장 큰 이유는...

구원을 잃어버림일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그 구원을...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며 내 삶을 전율케 만드는 그 구원을...

 

잃어버린 구원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방종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물든 복음의 옷을 벗고 사치스런 옷을 입었다.

두려움을 상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다"는 

과거형 속에 축복과 세상을 즐기는 향락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불쌍하다.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구원은 과거형이 없다.   오직 현재형과 미래형 뿐이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누가 천국을 약속이라도 받았는가?

도데체 성경에도 없는 이 확신은 어디서 온 것인가!

 

어쩌면 이 말에 반발심도 생길지 모른다.

“구원이라니! 우리가 받은 구원 말입니까?”

그렇다. 구원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린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이 아닌 교리가 순화시킨 가짜 구원을 들었을지 모른다.

오랫 동안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줄 알고 있다.

교리가 순화시키고, 강단이 순화시키고, 여러 가지 현상들이 희석시킨 가짜 복음을..,

 

교회가 잃어버린 언어, 구원.

불행하게도 교회는 하나님의 언어, 구원을 잃어 버렸다.

우리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회복해야 한다.

               (계3:14-18)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다시 성경 앞에 서자

다시 구원의 도를 깨닫자!

다시 옷을 찢고 회개하자!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 앞에 내 몸을 던지자.

그가 일으키실 것이다.

내 속에 소망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