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죄와 잘못을 덮습니다. 만약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 일일이 매를 들고 벌을 내리신다면 잔인한 하나님이 아닐까요?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잔인해 보이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잘못하면 혼내고 벌주고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사랑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신약성격의 예수님이 구약의 하나님보다 훨씬 사랑스럽고 좋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의 신이고, 신약에 나오는 신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버리고 신약만 좋아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서도 구약을 많이 인용하는 마태복음과 히브리서를 읽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것은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님은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계십니다. 공의와 사랑은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입니다. 앞면과 뒷면의 다른 두 면을 가지고 있어도 한 손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함께 일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았습니다. 노아 시대의 죄인들은 모두 홍수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를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원죄에 대해 지금도 죽음으로 벌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짓는 자범죄 혹은 고의로 짓는 고범죄에 대해서도 벌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즉각 죄인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조죄인이 잘 되고 의인이 힘들게 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눅16:19-31)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매일 잔치를 했고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사로는 거지였습니다. 배고프고 병들고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사로는 거지였습니다. 배고프고 병들고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부자는 죽어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결국 가난했던 나사로보다 부자의 마지막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벌을 받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조죄를 지으면서도 잘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죄인이 죄를 지어도 잘 되도록 놓아두는 것은 복이 아니라, 벌입니다. 결국 죄인은 심판의 때에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교리와 함께하는 365 가정예배> 중

- 임경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