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57

 

 

고소 좋아하는 목사님들 - 가진 건 돈, 갖고 싶은 것도 돈

 

 

최근 여러 믿음의 형제들이 또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 고소의 주체는 잡다한 부정 의혹이 가득한 어느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정말 이상한 점은 성도들이 목회 비리에 대해 이유있는 비판을 하면 그 내용에 대해 즉시 해명하고 대응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일단 그런 진한 의혹들에 대해선 일체 입을 다물고 한동안 버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약간의 빈틈이라도 생기면 기회를 잡아 말꼬리를 물고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것입니다. 비리 의혹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오로지 '삯꾼 목사', '사기꾼 목사', '가짜 목사', 그리고 '맘몬 목사' 등의 표현을 문제 삼아 제소합니다.

아마 오늘날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 오셔도 이들의 고소를 피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분들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맘몬'이란 말보다 더욱 심한 '독사의 새끼'나 '지옥 자식' 등의 극한 표현도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간혹 어떤 목회자들은 '허위사실 유포'란 명목으로 교인을 고소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사실은 실제로 있던 비리를 권력의 도움으로 밀어부쳐 억지로 덮거나 발뺌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 정신'이 없다


       
얼마 전 자승 스님은 불교계를 탄식하며 "불교가 지난 50년 동안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 육사 생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군인 정신이 있는데, 도대체 우리는 '중 정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필자가 보기엔 오히려 일부 목사들은 도무지 '종 정신'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는 주의 종입니다. 그런데 종이 무슨 명예를 운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톨릭 사제들이 명예훼손죄로 신도를 고소하는 것은 별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사실 진짜 종들은 명예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습니다. 종이 어떤 신분입니까. 주면 주는 대로 먹고, 굶기면 굶고, 굴리면 구르고, 때리면 맞고, 그리고 죽이면 죽는 것이 그게 종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모두 종으로 고생하며 살다가 종처럼 순종하고 죽었습니다.

헌데 어떤 방자한 종들은 욕 몇 마디 듣고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주인의 자녀를 고소하겠답니다. 목사 안수시에는 '종으로 살겠다'고 서약하고는 이제 와서 귀족처럼 살려 하니 도리어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지요.

그리고 막말로 성도들이 괜히 욕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처신을 잘못하면 나라의 임금님이라도 욕을 먹는 법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욕 먹을 짓만 잔뜩 해 놓고 나서는 함부로 자신을 질타하지 말라고 적반하장으로 난리입니다.

요즘 잘 나가는 일부 목사들은 외부 초청 강사비만으로도 매달 천만 원 이상의 부수입을 가볍게 벌고 있다고 합니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항상 늘어놓으니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은가봅니다. 그러나 실상은 목사들이 사조직에 준하는 인맥을 만들어 놓고 서로 순환하며 교차 초청하여 상대방 교회돈을 듬뿍 나누어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자기 교회에서 주는 연봉도 고스란히 알뜰하게 다 받습니다.

목회가 아주 실속있는 고급 비지니스가 된 것입니다. 극히 일부의 이야기이겠지만, 일년에 한 백화점에서 수천만 원 어치의 옷을 구입하는 목사도 있다는 보도를 보면 이들의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 짐작이 갑니다.

그러니 이런 귀족 종님들에게는 영업상 명성과 명예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바로 돈과 직결됩니다. 목사의 소문이 안 좋으면 다른 불이익도 많겠지만 우선 당장 강사 초청이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 이름에 약간의 흠집이라도 생기면 아주 노골적으로 '묻지마 고소'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소를 해도 대부분 자기 돈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아주 거룩한 종답게 교인들이 바친 '헌금'으로 비싼 변호사를 사서 무고한 양들을 '빌라도의 법정'에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하신 말씀처럼 복음서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종교 권력자들에 의한 '법정 압제'의 슬픈 역사는 오늘도 또 반복되고 있습니다.

 

'묻지마 고소'는 이단들의 수법

 

개혁자 칼뱅은 언제나 진실을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요즘 어떤 목사님들처럼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모호하게 말하지 않았고, 치장된 품위와 인위적 우아함으로 말하지 않았고, 그리고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돌려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기독교강요>에서 그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중세 교황과 주교들에 대해 '복음의 최고의 적', '그리스도를 가장 미워하는 원수', 또는 성도들을 죽이는 '잔인한 도살자'라고까지 극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 지도를 '사기'와 '기만'이라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또 당장 고소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목사들이 중세의 그 교황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교권주의와 성직주의의 단맛에 심취한 비리 목사들은 교회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십자가를 버리고 '목사 왕국'을 세우려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를 가르치며 예레미야의 '애절한 경고'를 배척하고, 세례요한을 가르치며 세례요한의 '청빈한 삶'을 배척하고, 바울를 가르치며 바울의 '검소한 사역'을 배척하고, 그리고 예수를 가르치며 '예수님의 섬김'을 배신하는 자들입니다. 즉 말과 행실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른말을 하는 사역자'입니다. 그들이 자주 쓰는 속된 말로 하자면 "까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단이 두렵고, 이사야가 두렵고, 아모스가 두렵고, 미가가 두렵고, 그리고 헤롯왕처럼 세례요한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냥 조용하게 교인들을 속이며 두꺼운 배를 마냥 불리고 싶은데 저 사람들이 이만저만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껏 모여서 열심히 연구한 것이 고작 고소질입니다. 소위 성직을 맡았다는 자들이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고전6:6)"는 사도바울의 준엄한 책망도 가볍게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이 '묻지마 고소'는 이단들이 개발한 전술입니다. 과거엔 이단들이 주로 폭력이나 집단 시위 등 물리적 실력 행사를 많이 했었는데 그에 대해 사회적 반발이 워낙 커서 부작용만 많고 별 실효성이 없으니 차선책으로 세운 방법이지요. 그리고 그 덕분에 잔재미를 제법 쏠쏠하게 본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부자라면 모를까 평범한 성도들이 변호사를 고용하여 돈 많은 사이비 교회의 이단 목사를 상대로 지루한 법정 싸움을 감당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따라서 요즘은 이단이나 사이비에 대한 비판도 매우 조심해서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가진 건 돈밖에 없으니 일단 고소가 제일 만만한 것이지요. 결국 비장한 용기가 없으면 이단을 이단이라고 말 못 하고, 사이비를 사이비라고 말 못 하고, 그리고 돈 밝히는 목사를 맘몬의 종이라고 말하기 힘든 혼탁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가진 건 돈, 갖고 싶은 것도 돈

 

아무튼 지금은 이런 치졸하고 사치한 수법을 정통 교단의 일부 목사님들도 자주 애용하고 있습니다. 그저 툭하면 고소입니다. 양심이 있는 목사라면 교인들이 비판을 할 때 깊히 자숙하고 회개하는 것이 옳건만 오히려 목사를 모독했다고 핑계 삼아 무더기로 법정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왜 목회자들의 송사가 근래에 들어 이렇게 갑자기 급증하고 있을까요? 사실 그 답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고소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지킬 것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그리고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이 모두 가난했던 시절에는 고소나 고발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지금 일부 비리 목사들이 외견상으론 명예를 지킨다고 고소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원래 '진정한 명예'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명예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세인들에게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위선적 목회와 철면피한 삶을 살겠습니까.

요즘 대형 교회 유명 목회자들 중에 존경을 받는 분이 과연 몇이나 있습니까. 오히려 비리 정치인들보다도 더 심하게 욕먹고 있는 것이 일부 개신교 목사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를 '먹사'라고 합니다. 아무튼 변질한 목사들이 진정 지키고자 하는 것은 돈과 권력입니다. '가르치는 장로'의 직분인 목사들이 돈으로 사치하고 방종하게 부패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목회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가진 건 돈, 갖고 싶은 것도 돈"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맘몬'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우물쭈물 '목회 독재'를 계속 방관한 결과 이젠 목자가 양을 법정에 세우는 기막힌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잘 돌보라고 양치기 목동의 귀한 직분을 맡기셨건만 고작 한다는 일이 양들의 입을 막으며 압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말려도 결코 듣지 않겠지요. 반대로 이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소통을 거부하고 돈과 권력과 인맥과 고급 변호사를 동원하여 '방탄 목회'를 더욱 강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평신도 소송단'까지 만들어 담임목사에 반대하는 교인들을 아예 전문적으로 고소하려고 합니다. 정말 가지가지하고 있습니다. 재정, 학력, 그리고 경력 의혹 등을 목사 스스로 시원하게 공개하고 해명하면 벌써 간단히 끝났을 일을 가지고 그냥 본격적인 교회 분쟁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력을 해명하는 것이 뭐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울까요. 도대체 왜 이러실까요.

 

신성 모독죄, 성전 모독죄, 그리고 성직자 모독죄

 

예수님조차도 '신성 모독죄'와 '성전 모독죄'로 고소 당하셨슴을 잊지 마십시요. 교회가 타락하면 선지자도 못 알아보고, 메시야도 못 알아봅니다. 유대의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은 선지자가 오면 선지자를 죽였고, 메시야가 오면 메시야를 죽인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젠 '목사 모독죄'라도 하나 더 추가로 만들어 양들을 도살해야 할까요.

어느 시대이건 종교가 타락하면 고소와 재판이 성행했습니다. 부패한 종교 권력자들은 선한 논리와 언어로 소통할 능력이 부족하니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특히 중세 교회의 '종교재판소(Inquisitio)'가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수많은 무고한 성도들이 이단으로 몰려 잔인한 고문을 받고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 모두가 소위 성직자란 자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저지른 파렴치한 범죄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잘못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입술로는 늘 예배와 제사와 헌신을 떠벌이지만 실제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공교회를 장악하고 교회법과 세상법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일찍이 하나님께서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고 탄식하셨을까요.

여러분들은 과연 신성 모독, 성전 모독, 그리고 성직자 모독 등 '종교적 신념'에 관한 사항들이 정말 세상의 실정법으로 다스려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논리적인 언어로 시비를 가리고 상식적으로 소통하면 무슨 특별한 문제라도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누가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해서 세상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고 벌금형이나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도적질하는 목사를 도적이라고 말하고, 사기치는 목사를 사기꾼이라 말하고, 돈으로 사치하는 목사를 맘몬 목사라고 말하는 것이 그토록 잘못된 것인가요. 이는 스탈린을 '독재자'라고 말하고, 이완용을 '매국노'라고 말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요. 이것이 정말 법의 심판을 물리적으로 받아야 할 정도로 사회 정의와 도덕에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까. 그게 참된 법의 정신일까요.

 

목사 모독죄는 상식과 양심의 문제

 

감히 하나님을 모독해도 침묵하는 것이 세상법인데, 하나님의 일개 종놈인 목사가 모독을 당했다고 자기 교인들을 법정에 불러내어 발끈하는 것이 너무 우습지 않습니까. 종이 자기 성질대로 하고 싶은 짓을 다 한다면 그게 무슨 종인지요. 이건 실정법을 따지기 이전에 그냥 보편적 자연법과 상식과 양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직을 맡은 자 또는 공인으로서의 목사를 비판하는 것이지, 목사 개인을 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삯꾼 목사'란 비판 또한 개인적 인신 공격의 의도가 아니라, 목사의 공적 행위에 대한 지적일 뿐입니다. 실제로 삯꾼 짓을 하고 있으니까요.

필자도 때로는 억울하게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는 목사님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함부로 모독하거나 욕하는 행동은 극히 삼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개'라고 해서 내가 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고의든 실수든 혹자가 목사의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이는 본질상 대화로 소통하고 시비를 가릴 문제이지 촐랑거리며 세상 법정으로 달려갈 사항은 결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게 성경의 바른 가르침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너를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자세가 과연 정상적인 목회자가 할 처신일까요. 밴댕이 소갈머리를 지닌 소인배라면 모를까 결코 주님의 제자가 할 도리는 아닙니다. 평생 '제자훈련'만 하면 뭐 합니까. 실제로 제자답게 살아야지요. 게다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마5:39)"는 말씀은 앞으로 어찌 설교하시려는지요. 이러니 요즘 어떤 목사님들은 '종 정신'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도는 것입니다.

지금 목자를 배신한 배부른 목동들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준비한 그 사치스런 법정에는 단지 힘없는 양만 홀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양들을 구원하기 위해 빌라도의 법정에서 침묵하셨던 우리 예수님도 함께 서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소 좋아하시는 목사님들은 이 순간 양들의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결단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소 따위로는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는 법입니다.

샬롬!

 

"고대의 어떤 장로들은 자기의 유산을 하나님께 드리고 스스로 빈민이 되었다. 따라서 사역자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그리고 빈민들도 무시되지 않도록 분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검소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역자들이 사치하고 방종한 생활을 할 정도로 많이 받지 말고 꼭 필요한 정도로만 받도록 규정했다." - 칼뱅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