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자문위원장이신 손봉호장로님의 저서 ‘윗물은 더러워도‘ 중 ‘인격적인 감화‘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내가 매우 존경하던 윤봉기목사님이 74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중학교 1학년, 교회에 처음 출석할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를 때까지 나는 줄곧 그 목사님 밑에서 신앙 교육을 받아왔다. 장례식과 하관식에 참례하면서 그분의 감화가 얼마나 컸으며 나의 신앙 인격이 그분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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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에 대하여 너무나 엄격하셨고 그의 태도는 항상 근엄하셨다. 사생활에도 너무 철저히 엄격, 공정, 담담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목사님을 두려워하였고 존경하였다. 윤봉기목사님은 나에게 목회자상(像)을 심어 주셨고, 그것은 내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이었기 때문에 마침내 나는 목사직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포기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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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 만큼 실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훌륭한 점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데 있지 않고 그 실수를 빨리 인정, 고치시는데 있었다. 한번은 기독교 신문을 통하여 당신의 잘못에 대한 공개사과를 발표하신 일이 있다. 요사이 정치꾼들에겐 눈도 껌뻑 않을 일이었지만 그 공개사과로 말미암아 그를 추모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수는 늘었고 그 흠모의 정도도 깊어졌다.

 

나는 훌륭하신 목사님 밑에서 신앙의 수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여간 감사하지 않는다. 비록 그분을 잘 닮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떤 것이 옳고 아름다우며 고상한가를 알도록 그분은 생활로 우리를 가르쳤으며 그것은 하나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날 불행하게도 인격적인 감화를 끼치는 정신적 지도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모두 재주만 뛰어난 기능인들로 바꿔지고 있는 느낌이다. 심지어 인격적 감화가 매우 중요해야 할 기독교계와 교육계에도 그것이 별로 중요시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깊은 인격에서 우러나지 않는 입에 발린 말의 유희, 신념의 뿌리가 없는 임기응변의 기회주의, 다른 인격들의 궁극적 이익보다는 피상적이고 임시적 쾌락을 제공하려는 잔재주가 점점 더 우리의 정신계를 지배하고 있다.

감화를 끼칠 수 있는 인격이란 인스턴트 커피처럼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40일 금식하여 누구나 바울이나 손양원목사처럼 될 수만 있다면 한국은 이미 완전히 기독교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돌팔이 지도자는 돌팔이 의사보다 더 게으른 자들이고 돌팔이 의사보다 더 무서운 해독을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자들이다. 못난 백성만이 독재자를 생산하듯, 못난 제자들이 엉터리 스승을 따른다. 우리나라의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 엉터리가 많은 것은 단순히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들을 따르는 못난이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파리떼처럼 증식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누가 진짜며 어느 것이 가짜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면 거기엔 이미 스승이 필요없고, 정작 스승이 필요한 사람은 참과 엉터리를 구별할 수 없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악순환은 깨어져야 우리 사회와 교회는 희망이 있다. 아무리 문화가 기능주의로 흐를지라도 한 사람의 훌륭한 인격은 위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하나의 돌팔이는 무수한 새끼들을 깔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위대한 인격은 겸손하여 자기가 위대함을 모르고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줄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용히 숨어 살다가 소리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윤목사님은 당신께서 끼친 감화의 정도를 모르고 가셨다.“